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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일자리 대격변 시대…암묵지 보유자·AI 통제하는 자가 살아남는다2026-10-01 22:11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온·오프라인 전반의 고용 시장이 요동치고 있으나, 직업의 완전한 소멸보다는 인간과 AI의 협업을 통한 직무 재구성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국가와 기업 차원의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AI 혁명과 직업의 미래

AI 혁명은 실직 공포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기술 발전을 이끄는

IT업계에 가장 먼저 충격파가 왔다.

과거에는 수많은 시간과 고도의

숙련이 필요했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핵심업무가 명령어 몇 번으로

해결되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초급 사무직 절반이 사라지고 5년 안에 실업률이 10~20%까지 치솟을 수 있다.”

 

     글로벌 AI 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기술 발전으로 미래 일자리 시장이 급변할 수 있다는 암울한 경고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역시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대부분의 일’에서 필요하지 않게 될 것으로 예견했다. 기술 유토피아를 외치던 테크 리더들이 앞다퉈 ‘일자리 아포칼립스(대재앙)’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AI 혁명 가속화는 실직 공포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기술 발전을 이끄는 정보기술(IT)업계에 가장 먼저 충격파가 왔다. 수많은 시간과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핵심 업무가 AI 에이전트, 바이브 코딩(느낌으로 코드를 짜는 것)의 등장으로 명령어 몇 번으로 해결되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바이브 코딩 창시자’로 불리는 AI 전문가 안드레이 카르파티는 “이제는 코드 한 줄 짜지 않고 그저 (AI에) 지시를 내리고, 검토하고, 버그를 잡아낼 뿐”이라고 했다. 구글 제미나이 수석개발자인 야나 도간 역시 자신의 팀이 1년간 매달린 복잡한 시스템 문제를 앤스로픽 클로드가 단 60분 만에 해결했다는 충격적 일화를 고백하기도 했다. AI 도입은 IT업계뿐만 아니라 법률 등 전문 사무직, 심지어 블루칼라 일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소 5~10년 내 직업 자체가 소멸하는 대재앙은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인간은 과거의 반복 노동에서 벗어나 판단, 기획, 통제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숙련자의 ‘암묵지’(말이나 문서로 설명하기 어려운 체화된 작업 노하우) 역시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우리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일자리 대전환 시기를 전략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한다.

 

일자리 대격변 시대…암묵지 보유자·AI 통제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노동시장의 급격한 균열

     일자리의 변화는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미국 빅테크는 역대급 실적과 주가 상승에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도입을 통한 경영 효율화라는 명목 아래 수만 명의 정규직 인력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오라클(3만 명), 인텔(2만4000명), 마이크로소프트(9000명), 메타(8000명) 등에서 시작한 AI발(發) 인력 감축은 다른 업종으로 확산하고 있다. 나이키는 지난 4월 기술 부문을 중심으로 1400여 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전자결제 기업 페이팔 역시 앞으로 2~3년 내 전체 직원의 20%(4700명)를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AI 발전은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상징이던 변호사, 금융 분석가, 회계사 등 전문 직종의 고용 기반까지 흔들고 있다. 앤스로픽이 올해 초 AI 에이전트를 통해 PC 폴더를 열고 이메일을 읽으며 다중 업무를 처리하는 서비스(코워크)를 출시하자 관련 사스(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과 전문 법률회사의 시가총액 수백조원이 하루 만에 증발하는 사건도 있었다. 일본의 전통적 고용 모델(신입 공채, 정년 보장)도 AI 공습 앞에 흔들리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40년까지 일자리 약 200만 개가 AI로 대체될 전망이다. 사무직 일자리는 55%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 기업들의 채용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구인 계획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경력 채용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신입 채용을 그만큼 줄이고 있다는 뜻이다. 단순 자료 정리, 보고서 초안 작성, 데이터 입력, 분석 보조 등의 업무는 AI가 대신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의 청년 일자리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AI를 직무에 적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의 업무상 AI 활용률은 51.8%로, 미국(26.5%)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 그 이면에는 청년 고용의 급격한 위축이라는 차가운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1년 전보다 25만5000명 감소했다. 줄어든 일자리 대부분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됐다.

 

피지컬 AI에 블루칼라도 위험

    그동안 AI 발전에도 육체노동 중심의 블루칼라 영역은 안전할 것으로 여겨졌다. 인간의 정교한 손재주와 물리적 환경 대응 능력을 기계가 따라잡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AI와 로봇이 결합한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등의 발전으로 이런 낙관론도 무너지고 있다. 미국 휴머노이드 기업 피규어AI가 최근 공개한 실험은 놀라웠다. 사람의 원격 조종이나 개입 없이 내장된 AI 모델을 통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는 휴머노이드 3대가 교대로 200시간 동안 연속으로 25만 개의 택배를 완벽하게 분류했다. 로봇이 패키지 하나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2.83초에 불과했다. 인간 노동자는 피로를 느끼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로봇은 ‘불 꺼진 공장’(다크 팩토리)에서도 작업하는 데 무리가 없다. 국내 기업도 피지컬 AI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 공장 전체를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통합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 추진 조직과 로봇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현대차·기아 공장에 2만5000대 이상의 아틀라스를 배치할 계획이다. LG전자는 휴머노이드 전용 학습을 위한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자사 로봇 ‘LG 클로이드’를 투입해 현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작동시키면서 로봇의 두뇌를 학습시키는 일종의 훈련소를 만드는 것이다. 2030년까지 데이터 팩토리에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암묵지 보유자는 살아남을 것”

     우리는 이제 ‘인간 일자리 멸종’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노동 총량의 오류(lump of labour fallacy)’를 지적했다. 시장에 존재하는 전체 일자리 양이 마치 파이처럼 고정돼 있어 AI가 인간 업무를 대체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AI 도입으로 생산성이 오르고 비용이 낮아지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요와 산업이 창출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암묵지는 당장 AI가 대체할 수 없다.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의 정밀공정에서 발생하는 설비의 미세한 진동과 소리, 냄새의 변화 등을 알아채고 사고를 막아내는 것은 숙련자의 암묵지 영역이다. 세계 최강 전투기로 불린 F-22 랩터는 2009년 187대를 끝으로 생산이 종료됐는데, 이제 추가 생산은 어렵다고 한다. 부품과 도구 도면은 있으나 숙련공이 사라져 실물로 구현할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인력을 감축한 일부 기업 사이에서는 최근 ‘재고용 부메랑’ 현상도 관측되고 있다. 인간의 통찰력과 맥락 이해가 필수적인 업무는 여전히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다는 방증이다. 신입 채용 중단으로 수년 뒤 조직의 허리가 사라져 기업 연속성이 파괴될 것이란 우려로 재고용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인재관리(HR) 기업 커리어마인즈가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AI를 도입해 직원을 해고한 600개 회사 가운데 31%는 다시 인력을 채용하면서 비용이 더 들었다고 밝혔다. 42%는 재고용 비용이 절감액과 비슷했다고 답했고, 이득을 봤다는 응답은 27%였다.

 

일자리 소멸 아닌 직무 재구성

     한국은 어떨까.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간한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의 분석 결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국내 노동시장의 182개 직업을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앞으로 10년간 고용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 직업은 하나도 없었다. ‘다소 감소’는 12개(6.6%)였고, ‘현 상태 유지’가 114개(62.6%)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소 증가’와 ‘증가’를 합친 비율은 30%를 넘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특정 직업 자체가 증발하는 사건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각각의 일자리에서 수행하는 직무는 재구성될 것으로 봤다. 다시 말해 은행 창구 직원은 단순 수납 업무에서 자산 관리, 디지털 상품 기획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웹툰 작가는 채색과 배경 작업을 AI에 맡기는 대신 스토리 구상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직업의 소멸이 아니라 직무 안에서의 역할 재정의다. AI 발전으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직업도 나타나게 된다. 개인과 기업의 수요에 맞게 AI 성격과 가치관을 설계하는 ‘AI 캐릭터 디자이너’ 같은 직업이 유망해질 수도 있다. 사후에도 남는 AI 아바타에 대한 권리와 상속 문제를 다루는 전문 법률가도 등장할 수 있다. AI가 못 하는 날것의 인간적 놀이 경험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직업이 뜰 수도 있다. 산업혁명 시대에 기관사, 기계정비사, 전신기사 등이 생겨났듯 AI 시대에도 상상하기 힘든 곳에서 새 일자리와 사업 기회가 만들어진다.

 

AI 전환기 국가 차원 전략 세워야

     AI 혁명에도 앞으로 수년 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재앙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의 성격이 바뀌는 직무 전환의 파도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기업은 단순한 인력 절감이 아니라 ‘인간과 AI의 협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로 나아갈 수 있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인재를 키우는 기업에 다양한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일자리 전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갈수록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를 어떻게 늘려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AI 생태계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는 국가다. 핵심 인프라인 고성능 반도체 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고, 피지컬 AI 기반도 탄탄하다. AI 혁명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기술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두려움이 아니라 이를 최대한 활용해나갈 역량이다. 기계가 물리적·지적 반복 노동을 담당할 때 인간은 판단과 통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앞으로 대인관계와 사회적 기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AI와 인간이 협력해 업무를 수행하면 그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혁명이 촉발한 대변혁 시기에 일자리 아포칼립스를 막을 국가 차원의 전략과 우리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한국경제, 2026.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