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척 대 133척의 전함이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무기 수준이 비슷하다면 숫자가 많은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10분의 1도 안 되는 숫자로 상대를 대파한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명량해전이다.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의 지략에 따라 물살이 빠르고 해역이 좁은 울돌목으로 적을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명량해전은 지형지물을 치밀하게 읽어내고 물살의 흐름, 속도,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하는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형지물과 물살을 읽어내는 방식은 센싱(감지), 데이터 수집, 학습을 통해 알고리즘을 완성해 가는 '피지컬 AI'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최근 세계적 석학들이 미래 경쟁력으로서 피지컬 AI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대한민국을 재조명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한민국 산업 현장은 풍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피지컬 AI 개발의 최적지로 불린다. 피지컬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차세대 인공지능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 공정에 피지컬 AI를 적용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 활용하는 로봇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단순 과정을 반복한다. 어떤 로봇은 핸들만 조립하고, 앞 유리를 끼우는 로봇은 그 일만 할 뿐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로봇을 동시에 활용하기도 어렵고, 복잡한 공정에는 적용이 쉽지 않다. 그러나 피지컬 AI가 구현되면 센서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최적의 협업 로직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다. 이기종의 로봇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가장 효율적인 작업을 해내는 것이다. 초정밀 작업을 위한 판단과 조율, 맞춤 생산을 위한 공정 개발, 에너지 사용의 최적화 등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작업까지 가능해진다. 인공지능의 완성형 단계인 피지컬 AI는 단순히 육성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산업 현장의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 분석, 학습해 알고리즘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 수준이 미약하여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플랫폼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중국과 함께 제조업의 모든 분야를 커버할 수 있는 나라로 평가받을 정도로 제조 분야에 강점이 있다. 그런 만큼 우선 제조업부터 피지컬 AI를 접목하여 육성한다면 세계 최강 수준의 피지컬 AI 플랫폼이 가능하리라는 판단이다. 제조업 분야를 우선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피지컬 AI는 정체기에 빠진 우리나라 제조업을 혁신하는 지렛대일 뿐 아니라,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 경제를 살려낼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각 지역에는 모빌리티, 철강, 바이오, 이차전지, 국방 등 산업별로 클러스터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방 곳곳이 데이터 생산기지이자 피지컬 AI 개발과 시범 구역으로서 훌륭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피지컬 AI 육성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은 물론 지역 경제를 살려내는 일거양득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피지컬 AI의 육성은 정부가 발표한 국정과제 '세계를 선도할 넥스트 전략기술'과도 맞물려 있으며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중심 국가 균형성장'과도 안성맞춤이다. 또한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차관이 입을 모아 제조 AI에 대해 협업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상상 이상의 효과도 낼 것으로 기대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마주하게 될 피지컬 AI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에 절체절명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도력과 함께 거북선이라는 훌륭한 조선 기술이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듯이, 그간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해 왔던 제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발판으로 우선 이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형 피지컬 AI 플랫폼과 솔루션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선점한 시장을 따라잡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같은 전략'과 함께 우리가 가진 강점을 더 강하게 하는 '피지컬 AI 같은 공격형 전략'을 펼쳐야 한다. 공격과 수비 양면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은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매일경제, 2025. 8.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