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육종의 필요성
전통적인 육종 연구는 육종가의 경험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숙련된 육종가를 양성하고, 다양한 품종을 교배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반면 디지털 육종은 유전자 분석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연구 과정을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스피드 브리딩 기술(환경 제어로 육종을 가속화하는 기술) 등을 결합해 품종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세계적인 종자 기업들은 이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품종 개발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 바이엘은 리보핵산(RNA) 플랫폼을 기반으로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 품종을 개발했고, 신젠타는 크리스퍼(CRISPR·유전자 편집 기술)와 같은 분자육종 기술을 활용해 비타민이 풍부한 토마토를 만들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이러한 사례는 디지털 기술이 농업 혁신의 핵심임을 보여준다”며 “우리나라도 글로벌 종자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육종 활용 사례
1999년 개발된 ‘신동진’ 품종은 쌀알이 크고, 밥맛이 좋아 소비자와 농업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품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병 발생이 빈번해졌고, 2021년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이삭도열병이 급증했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분자육종과 전통육종을 융합한 분자표지활용 선발 기술과 표현형 생물검정 기술을 병행해 저항성유전자 4개를 집적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신동진’ 품종과 유전배경이 96.3% 일치하면서도 병에 강한 ‘참동진’을 개발해 보급했다. 농촌진흥청은 분자육종 기술을 채소에도 적용했다. 배추, 무, 오이, 수박, 호박 등 5개 작목에 대해 세대단축용 대량마커세트를 개발해 육종 기간을 50% 단축했다. 이는 농촌 현장의 수요를 반영해 연구를 진행한 결과다. 대량마커세트 기술이전을 통해 품종 초기세대 선발효율도 증진됐다. 또한, 순도검정용마커 개발로 종자 혼입을 방지하고 국가 종자 유통 관리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육종 혁신 추진 방향
농촌진흥청이 추진하는 디지털 육종 혁신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육종을 넘어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육종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칭 ‘한국 디지털 육종 플랫폼’을 만들어 2027년까지 59개 작물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이를 기업과 연구기관에 공유할 예정이다. 이 플랫폼은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 분석과 예측에 활용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출 예정이다. 농촌진흥청은 먼저 기존에 수집된 데이터가 많은 벼, 콩, 한우를 대상으로 AI 모델을 개발해 품종 육종을 돕는다. 이 모델을 통해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교배 조합과 육종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모델 개발이 완료되면 신품종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신속한 시장 대응도 가능해진다.
◇디지털 육종 혁신을 위한 협력
디지털 육종으로의 혁신이 성공하려면 정부뿐만 아니라 대학, 연구소,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민관의 협력을 통해 디지털 육종 생태계를 만들고, 민간의 첨단 신기술을 농업 분야에 빠르게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 대학, 전문 연구소, 민간 육종 기업 등이 모여 ‘민관 협력 디지털 육종 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에선 분야별 빅데이터를 수집해 표준화하고, 이를 연계·통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AI 예측 모델도 개발한다. 협의체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국가가 추진하는 플랫폼은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 의미가 크다”며 “지속적으로 정보가 축적되고 활용성이 향상되면 디지털 육종에 큰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른 참여자는 “사용자 중심의 활용을 위해 플랫폼 이용자에게 어떤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는지 뉴스레터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디지털 육종, 지속가능한 농업의 미래를 열다
디지털 육종은 품종 개발의 시간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여준다. 농촌진흥청은 벼·채소 등 주요 작목 외에도 우리 밀의 보급을 위해 디지털 육종과 스피드 브리딩 기술 융합으로 13년이 걸리던 육종 기간을 7년으로 단축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신속한 품종 개발로 우리나라 농업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기회를 제공한다. 디지털 육종은 농업 기술의 발전을 넘어,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량 안보를 위한 중요한 열쇠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한 나라의 농업 혁신을 넘어, 글로벌 농업의 미래를 밝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의 디지털 육종 혁신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는 기술과 농업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며,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우리 농업의 미래를 밝게 열어줄 것이다(조선일보, 2024. 2.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