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선허용 후규제 필요 제기 기술 경쟁력 생태계 구축 시급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이 대규모 모델 개발 중심에서 실용화·산업 적용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투자 흐름 역시 기초 모델에서 서비스와 응용 분야로 이동하는 가운데, 각국의 규제 방식이 갈라지며 AI 정책은 산업 전략이자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특히 주요 국가들이 관련 규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거나 정책 방향을 구체화하면서 ‘AI 규제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AI 시장은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시장에서는 투자 축이 대규모 언어모델 개발에서 산업 적용과 서비스 중심의 ‘실용 AI’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와 함께 기술 경쟁을 넘어 각국의 규제 체계가 차별화되면서 AI 정책은 단순한 기술 관리가 아닌 산업 전략이자 국가 경쟁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주요국들이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시행에 나서면서 글로벌 AI 질서 역시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현재 글로벌 AI 정책은 크게 ▲유럽연합(EU)의 ‘위험 기반 규제’ ▲미국의 ‘혁신 우선’ ▲중국의 ‘국가 주도 확산’ 등 세 가지 방향으로 구분된다. 이에 한국 역시 규제와 산업 육성 간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U, 위험 기반 규제 구축 우선 EU는 AI를 위험 수준에 따라 관리하는 ‘위험 기반 규제(Risk-based approach)’를 중심으로 가장 강도 높은 규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 혁신 속도보다 신뢰성과 안전 확보를 우선하는 접근이다. EU가 2024년 7월 12일 공식 관보에 게재한 ‘EU AI Act’에 따르면 AI 시스템은 위험 수준에 따라 ▲금지 ▲고위험 ▲제한적 위험 ▲최소 위험 등 네 단계로 분류된다. 범주별로 적용 규제를 달리해 위험도가 높은 영역일수록 엄격한 의무를 부과하는 구조다. 이 중 ‘금지된 AI’는 사회적 점수화나 인간 행동을 조작하는 시스템 등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기술을 포함하며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됐다. ‘고위험 AI’는 의료, 채용, 교육, 금융 등 시민의 권리와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포함하며 해당 시스템을 개발·운영하는 기업에는 위험 관리 체계 구축, 데이터 품질 확보, 기술 문서 작성, 인간의 감독 가능성 확보 등에 대해 올해부터 엄격한 규제가 요구될 전망이다. 특히 EU는 생성형 AI를 단순 서비스가 아닌 ‘범용 AI(GPAI)’로 별도 규율하고 학습 데이터 공개, 저작권 준수, 모델 문서화 등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 의무를 부과했다. 이용자가 AI와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인지하도록 하는 표시 의무도 포함됐다. 또 다른 특징은 ‘역외 적용성’이다. EU의 규제에 따라 EU 내에 사업장이 없더라도 유럽 시장에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동일한 규제를 따라야 한다. 이른바 ‘브뤼셀 효과’를 통해 EU 기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시키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EU의 접근은 기술 혁신의 속도보다 신뢰성과 안전을 우선시하면서 규범을 통해 장기적인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미국, 규제보다 혁신 우선 반면 미국은 규제보다는 혁신을 우선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포괄적 AI 법은 아직 부재한 가운데 기업 자율과 시장 경쟁을 기반으로 기술 발전을 유도하는 모습이다. AI 산업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최근 정책 논의에서도 ‘가벼운 규제(light-touch)’ 원칙이 강조되고 있다.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의 규율을 설계하겠다는 접근이다. 폴리티코,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AI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규제 최소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의회가 AI정책 청사진을 의회에 해당 정책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행정부는 민간 주도의 기술 혁신을 우선시하고, 정부 개입은 제한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각 주 정부의 AI 규제 권한을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별로 상이한 AI 규제가 기업 활동을 저해하고 혁신을 늦출 수 있다고 판단, 연방정부가 규제 권한을 통합해 기업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기조는 연방 차원의 AI 법안 논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주(州)별로 서로 다른 AI 규제가 도입되면서 기업들의 혼란과 규제 중복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최근 공개된 연방 AI 법안 초안은 국가 단일 규제 체계 구축을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이른바 ‘4C(아동·창작자·지역사회·표현)’ 보호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구체적으로는 AI 서비스로 인한 사용자 피해 방지 책임을 기업에 부여하고, 저작권 보호를 강화해 AI가 무단으로 창작물을 학습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AI 생성 콘텐츠의 출처 표시 의무와 청소년 보호 조치, 그리고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겼다. 다만 이러한 규제 강화 움직임 속에서도 미국은 ‘규제-성장 병행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안전과 책임성을 강화하되 과도한 규제로 혁신이 위축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기술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사후적으로 관리하는 유연 규제 모델에 가까운 셈이다.
◆중국, 국가 개입으로 보편화 중국은 국가 통제 중심 모델로 AI 확산 속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에 대해 사전 심사와 등록을 요구하고, 콘텐츠 책임을 기업에 부과하는 등 통제와 확산을 병행하는 구조다. 특히 중국의 최근 AI 정책의 핵심은 단순한 산업 기술이 아니라 전기나 수도처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초 인프라로 전환하려는 전략에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데이터 단위인 ‘토큰’을 공공재로 규정하고 사실상 무상에 가까운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기술 지원을 넘어, 글로벌 AI 경쟁에서 ‘표준’이 아닌 ‘시장 점유율’을 먼저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즉, 미국과 EU가 규칙과 기준을 설계하는 동안, 중국은 압도적인 사용량과 생태계를 기반으로 사실상의 표준을 만들어내겠다는 접근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AI와 제조를 한데 묶는 정책을 통해 산업 전반에 AI를 강제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국무원과 공업정보화부 등은 2027년까지 300개 이상의 산업용 AI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제조업 현장을 중심으로 AI 에이전트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생산 방식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중국에서 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국가 전략 도구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AI 에이전트는 재고 관리, 물류, 고객 응대 등 현장 업무를 대체하며 노동력 감소 문제를 보완하고 있으며, 로봇과 결합한 ‘피지컬 AI’까지 확산되면서 산업과 일상 전반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간에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표준과의 충돌이나 기술 의존 구조 고착화라는 새로운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중국의 AI 정책은 규제의 강도보다는 국가 주도의 확산 속도와 시장 장악력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서구식 규제 모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궤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韓 ‘균형 모델’ 속 전략 전환 한국은 규제와 산업 육성을 병행하는 ‘균형형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AI 기본법’을 중심으로 한 제도 설계로, 산업 진흥과 신뢰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구조다. 특히 생성형 AI와 고영향 AI에 대해 사용 사실 고지와 생성물 표시 등 투명성 확보 의무와 안전성 관리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형벌보다는 행정적 조치를 중심으로 규제 부담을 완화한 점이 특징이다. EU식 강한 사전 규제보다는 유연한 규제 체계에 가깝다. 다만 이러한 접근을 두고 보다 적극적인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 회장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규제를 먼저 도입한 국가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며 “AI 정책 역시 규제 중심이 아니라 기술 경쟁력 확보와 산업 생태계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기능·후규제’ 방식으로 전환해 기술 상용화 속도를 높여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먼저 부작용이나 규제를 연구해서 규제를 ‘국제적 기준’ 수준으로 만드는 데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AI는 초기 수준이다.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규제를 한다면 그 규제가 적절한 수준인지 아닌지는 현재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며 “우리나라는 특히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 강국인 만큼 우리가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것은 활용하고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뒤로 미뤄야 한다”고 덧붙였다((재)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 원장 석호익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