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중추, K제조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백악관에서 향후 4년간 21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한 데 이어 삼성, SK, LG, 포스코 등 국내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해외투자 규모만 150조원을 넘어섰다. 단순한 생산기지 이전을 넘어, 기술·인력·부품사까지 동반 탈한국 행렬을 이루며 제조업 가치사슬 전체가 빠져나가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각하다. 미국 대규모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압박에 대한 선제 대응 성격이 크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고질적인 규제, 반기업 정서, 강성 노조, 높은 법인세와 상속세 등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고질적인규제는 첨단 제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국 내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관세라는 채찍으로 해외 기업의 유치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와 조지아주 등은 삼성, 현대차, SK, LG 등에 세금 감면과 인프라 지원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투자를 유도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표 제조업체들은 ‘규제의 늪’을 벗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한국과 유사한 제조업 기반을 가진 독일과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첨단 제조업 혁신을 지원하며 고부가가치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더욱 공고히 했다. 독일 정부는 규제 완화, 디지털 인프라 투자, 중소기업 기술 혁신 지원 등을 통해 자국 내 제조업 기반을 지켜냈다. 일본 역시 엔고(円高)와 생산비 증가로 제조업 탈일본 현상이 심화됐지만, 정부의 강력한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 국내 복귀) 정책과 연구개발 투자 지원으로 이를 방어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CHIPS(반도체)법 등을 통해 대규모 세금 감면과 보조금을 제공하며 글로벌 기업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기업을 잠재적 규제 대상으로 바라보며 시대착오적인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K제조업의 탈한국 현상은 더 이상 기업들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 위기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패권 경쟁 등 격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한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지금 당장 과감한 정책 전환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K제조업의 탈한국을 위해서는 먼저 규제 혁신과 노동 유연성 확대가 절실하다.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에 한정해서라도 주 52시간 근로제의 예외를 인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과도한 처벌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 기업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법인세 인하, 상속세 완화 등 세제 개편을 통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기업들의 재투자와 고용 확대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독일처럼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혁신을 지원하고, 일본처럼 리쇼어링 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또한 첨단 기술 인재 양성과 산업 생태계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 간 협업을 강화하고, 차세대 반도체, 배터리, 미래 모빌리티 등 핵심 분야의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 제조업을 넘어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으로 도약하는 산업 구조 전환이 필수적이다. 민관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 중요하다. 기업과 정부, 노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 원장 석호익 拜). |